언젠가는 잊혀져.

2012. 2. 19. 15:06나를 위한 위로









손을 받쳐들고 먹어야 할 것 같은 아주 허름한 식당에서 곰치국 한 그릇을 비우고 나왔다. 습관처럼 주머니로 손을 가져가 담배를 찾는다. 그리고 딸깍 라이터로 불을 붙혔다. 나의 폣속 깊이 담배 연기는 다시 세상밖으로 토하듯 흘러나왔다.  
끝없이 펼치진 바다는 시리듯한 하늘과 빛깔의 조화를 이루고 있던 오후. 특별할 것 없는 오후가 시작된 것이다. 
걷는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이 이어진 길위에 나는 서 있었다. 마치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 처럼. 
무심한 파도는 하얀 물거품으로 다시 되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평범하기 짝이 없을 듯한 파도는 가끔 성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치 '나는 그리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다!'라고 시위라도 하듯. 얼마나 파도가 높았을까? 방파제 앞 가드레일까지 덮친 것이 분명하다. 나는 파도에게 말한다. '그래 너 잘났다.' 그런데 파도에게 생명의 끈질김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낫 바위에 부디치고 일개 거품으로 사라지는 파도가 대다수였지만 분명 그렇지 않는 놈도 있었던 것이다. 날씨가 흐르는 콧물도 얼려버릴 기세였으니 이 놈도 별 수 없었나 보다. 그렇게 파도는 자신의 흔적을 남긴채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만약 파도에게도 기억이 있다면 파도의 기억도 그대로 멈추었던 것일까? 가만히 얼어붙은 파도에게 뜬금없이 말을 걸어본다. 

"파도야 너 죽은거니 아니면 잠시 쉬고 있는거니? 너 이곳까지 온 것을 기억이라도 할 수 있는거니?" 

파도는 말이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계속해서 종알종알 말을 부쳤다. 
그리고 돌아서는 찰나. 끝도 없이 펼쳐진 곳에서부터 파도는 대답을 해왔다. 

"나는 파도야. 나는 늘 움직이고 있지. 가끔 누군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을때가 있거든. 하지만 수 많은 파도 속 하나의 파도로만 기억되기만 했지. 그러니까 말이야.. 음...언제나 잊혀지는 거지. 잊혀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파도라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어... 그런데 때로는 이렇게 날씨가 조금 도와주기도 해. 그리고 순간이지만 나의 멋진 모습이 너눈앞에 만들어졌지.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잊혀져. 그것이 운명이니까." 

그렇다. 시리듯한, 울고 있는 듯한, 파도의 눈망울을 보는 듯 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자신을 각인 시키기 위한 파도의 모습은 녹아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나의 당신의 평범한 오후도 언제가는 잊혀질 것이다. 잊혀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 말아야한다. 그 이유는 모든 기억이 모두 기억될 수 없으니까. 
다시 길을 재촉했다. 또 다른 평범한, 잊혀질 오후의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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