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던 날 #마지막편
2012. 3. 24. 02:21ㆍ일상다반사/오래되던 날
한 차례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지. 주섬 주섬 옷을 입고 비오는 거리를 나섰어.
별 것 없는 일상에 비가 나즈막히 땅으로 내려앉은 것이 뭘 그리 분란스럽게도 마음을 떨리게 하는지
속된 말로 나도 이제 나이가 많이 먹었나봐.
교복을 막 멋어던지고 만나왔던 그때의 너도 내게 없었느니...
일본식 모양을 띄고 있는 바에 앉아 적응되지 않는 형태로 대파가 잔뜩 들어간 짬뽕을 허기로 달래기 위해
허겁지겁 먹고 나왔으며, 너와 나의 추억은 존재하지 않는 거리로 거닐었어.
한 참을 걷다가 스스로의 풀에 지쳐버려 익숙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하염없이
울수 없는 감정으로 비오는 창밖의 거리만 응시했어. 가끔 무념으로 살고 싶은 이상이 실현되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머리속의 생각들은 한 차례도 차분하게 내일 올 미래를 기다리지 않았어.
그렇게 포장하지 않고 꾸미지 않았던 미소가 자연스럽게 나도 몰래 흘러나오고 있었어.
읽어오던 책 한 권을 펴들었지만 이미 생각의 잔상 속에 질려버렀는지 익숙함을 버리고 싶었는지
그대로 덮어버리고 말았어. 다시 두툼한 노트 한 권을 펼쳐들고 무언가를 써내려가고 싶었던 욕구에 끄적이기를
몇 차례, 역시 한 줄도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 수 없었어.
그래 다시 통유리로 막혀버린 다른 세상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약간의 식어버린 커피를 입으로 가져 댔었지.
그리고 익숙한 카페에선 익숙하게 흘려오던 눈물처럼
이 노래가 흘러나왔어.
"그냥 보내줘야 하는데 그런게 사랑이라는데
손을 흔들며 미소도 띄우며 너무나 착한 사람인 듯이
하지만 화를 내고 소리만 질렀죠
너없이는 안되는 내가
빨리 가라며 더 듣기 싫다며
다른 사람 흉내를 냈죠
안되는데 이럼 안되는데 잡아야 하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아요
내가 너무 싫어서 너무 지겨워 져서
떠나는 그대를 어떻게 하나요
남았는데 아직 남았는데 더 해야 하는데
그대를 향한 내사랑
이젠 주고 싶어도 그대가 안 원하죠
우리 처음 만난지 너무 오래되던 날
사랑도 타 버리나 봐요 뜨겁던 우리 사랑처럼
다 타고 나면 재만 남듯이 빈 가슴엔 아픔만 남죠
안되는데 이럼 안되는데 잡아야 하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아요
내가 너무 싫어서 너무 지겨워져서
떠나는 그대를 어떻게 하나요
남았는데 아직 남았는데 더 해야 하는데
그대를 향한 내사랑
이젠 주고 싶어도 그대가 안 원하죠
우리 처음 만난지 너무 오래되던 날
우리 처음 만난지 너무 오래되던 날"
그래 우리 만나지 너무 오래되었고, 되돌리기엔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꺼야.
다시, 네가 어떤 결정으로 내가 어떤 결정으로 우리 만날 수 없지만
우리 그냥 조금 틀어진 인연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물었던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짜증나'라는 짧은 답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네가 나를 잊어버린지 너무,
오래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