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zona Motel #403는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

2012. 4. 12. 20:13여행/포토에세이







Arizona Motel 403호는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적당한 모텔을 예약하고 30시간이 걸려 그 어느 Arizona Motel에 도착했다. 햇살은 내 고향 봄처럼 후끈 거릴 정도의 온도였고, 봄바람으로 부터 꽃씨들이 나풀거리는 평온한 어느 낮이었다. 카운터 종업원은 내게 방을 배정해주었고, 나는 맨꼭대기 방으로 달라고 했다. 4층의 어느 방중이었다. 그 종업원은 403호라고 쓰여진 방키를 내게 건내고 어떻게 하면 그 방으로 향할 수 있는지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403호는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것 처럼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었고, 건물의 제일 위 그리고 제일 측면에 덜렁 혼자 나를 반기고 있었다.


모텔 주인으로 추정된 한 사내는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잡아 세우고 403호에 대한 자랑을 늘어 놓았다. 30시간의 피곤함은 그 주인의 말소리를 흘려버리게 만들었고, 난 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었다. 그 사내는 그 후에도 나를 마주치면 계속 마치 간섭을 하듯 그 방에 대한 이야기를 흘렸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각, 흡연구역에서 담배 한 개피와 시름을 나누고 있을 즈음 역시 그 사내는 

"룸 403..블라블라..." 

내가 이 모텔 손님이 아닌 마치 이 방을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거나 무단침입자 정도로 치부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이 방을 비우고 다른 방으로 배정받기로 결심했다. 단 하루를 겨우 넘긴 시간이었다. 


로비에서 만난 종업원에게 방을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종업원은 이 방에 문제가 있는지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지만, 내가 원하니 군소리 없이 어느 다른 방으로 안내하였다. 물론 종업원에게는 '네 사장이 나를 귀찮게 해!'라고 하지 않았다. 


며칠을 머문 그 모텔.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마치 쫓겨나듯 다른 방에서 머물던 난 그 403호에 집착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403호가 궁금해 4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역시나 이 모텔 제일 꼭대기에 있고 전망이 좋으며 꽤 넓었던 방이어서 그런지 다른 손님이 그 방으로 향하는 것을 목격했다. 왜 난 그 403호에 집착했었을까? 왜 내가 사장의 그 잔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나와버렸던 것일까?

지금처럼 아무 신경쓰지 않고 403호로 당당히 체크인 하는 손님도 있는데...


그래 Arizona Motel 403호는 이미 나와 지낸 하루를 잊고 마치 아무 손님도 받지 않았던 양, 깔끔하게 정리된 채 새 손님을 받고 있었고,

그 주인은 방밖에서만 떠들었을 뿐, 객실 내부에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는데...


나는 내가 애착했던 그 방에 결국 스스로 나온 것으로 낙인 찍힌채 내가 가졌던 403호의 애정은 단 하루의 기억으로만 간직된 채 철저히 외면 당해야 했다. 어쩌면 403호는 언제나 내가 묵었는지 기억조차 못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강대국 힘의 논리에 의해 약소국의 이념은 철저히 무시 당하는 그런 형국이 되어버렸다. 다시 여행을 하면 또 어떤 숙소에 어떤 방을 배정 받을 것이다. 짧은 고민이 스쳐갔다.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다시 떠나 새로운 방과 인연을 맺을 것인지.


아마 더 이상 403호는 보지도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그 사장에 대한 원망과 쫓겨나온 기억을 간직한 채.


따가운 봄햇살 아래 쫓기는 것이 서러워 선그라스로 나의 깊은 눈망울들 가렸다. 

나는 서쪽으로 다시 달렸다. 집으로 향하기 위해서...


Arizona Motel 403호는 실제 존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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