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소작농의 삶

2012. 8. 30. 06:54사소함으로부터의 행복/2. 소박한 일상뒤의 눈물

 손으로 직접 벼를 베고 있는 소년 @2011





II. 소박한 일상뒤의 눈물

 

1. 현대판 소작농의 삶.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전환된 역사는 그리 오래지나지 않았다. 

민속 놀이에 나올 법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 글귀를 요즘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의 가정환경 또한 농사와는 전혀 관련없었고, 낫으로 벼를 베어본 기억도 없다. 

기껏해야 어린 시절 고추농사를 짓고 계시던 고모님댁을 방문해 고추밭에서 고추 몇 번 따본 것이 전부인 나의 농사와 관련 모든 기억이다. 

그 만큼 도시화에 익숙해진 세대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코르에는 시골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전혀 산업화 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에 의지해 자급자족의 형태로 살아온 것이었다. 

아코르에서 농사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뜨거운 대지의 열기 속에서도 감행 되어야 한다. 

유일하게 사람 손을 빌리지 않는 것은 밭갈이 할 소의 쟁기질뿐 나머지 모든 작업들은 

모내기, 잡초제거, 수확등 일일이 사람의 노동력이 요구되는 원시적인 농삿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이에서 할아버지까지 온 집안 사람들이 동원되어야만 했다. 


아코르의 여름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한 더위가 찾아왔다. 

영상 40~45도 혹은 그 이상의 온도로 거대한 찜통속에 들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왔다. 숨 쉬는 것만으로 땀 범벅이 되어버렸다. 

무더운 여름철, 모내기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 4-5월경 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물댄 논으로 옮겨 모내기를 하지만 

이곳은 모판 대신 어느 정도 자란 벼를 마른 논바닥으로 옮겨 심고, 비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몬순이 항상 비가 오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진농사대천명. 농사는 정말 하늘의 뜻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옛 이야기에 짚신 장수 아들과 우산 장수 아들을 가진 어머니의 마음처럼 비가 오지 않도 걱정,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늘 걱정인 셈이다. 

무서운 기세로 찾아오는 비와 바람의 몬순이 지나고, 여름내 뜨거웠던 대지가 식어가는 가을이 오면 벼들이 점점 고개를 숙인다. 

드디어 수확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다시 온 마을 사람들이 낫을 들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인다. 

역시 기계음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아이들 또한 학업은 중단 되고 머리에 볏단을 이고 옮기는 일손을 돕는다. 

집집마다 쌓여진 볏단들은 아낙들에 의해 나락털기로 이어진다. 

양손 가득 잡힐 만큼 움켜지고 신나게 털어내는 것이다. 낱알들이 떨어지고 짚만 남는다.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 

낱알을 모아 자루에 모아두고, 짚은 버팔로나 소의 겨울용 먹이 혹은 간이 난방용등 여러용도로 사용된다. 

 일년내내 농사 지은 쌀은 각가정마다 수백킬로그램의 포대에 담겨진다. 

그러나 그것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허겁지겁 불러 세워 물어보았다. 

“어디로 가져가는 거죠?” 

“땅 주인에게 빌린 값을 지불해야지. 5:5야. 우리는 촉(Chowk-광장)앞의 2층 저택에 사는 A집으로 가져다줘.” 

아… 끝이 보이지 않던 그 전밭의 땅주인은 대부분 근엄하시고 엄격하신 아코르 최상류층 브라만들의 소유물이었던 것이다. 

일년내내 고생하고 반은 땅을 빌린 값으로 지불 해버리는 것이다. 결국 남는 양은 얼마 없다. 

100kg의 쌀, 100kg 의 밀은 약 10명의 한 가정이 2달간 소비되는 양이다. 

적어도 쌀과 밀이 각각 600kg씩은 확보하고 있어야 1년을 먹을 수 있는 양인 것이다. 

노동력의 한계가 있으니 무작정 넓은 땅을 빌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가족 내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노동력 단위를 산정해 그 크기만큼 땅을 빌려하니, 생각보다 많은 수확은 기대하기 어렵다. 


 가을의 쌀 수확이 끝나면 쉬지 않고 다시 농사는 시작된다. 밀을 재배하는 것이다. 

비하르의 겨울 온도는 밀 재배를 위한 최적의 온도를 제공하는 것이다. 

밀 생육의 최저온도는 0~2도, 최고 온도는 40도 정도인데 비하르의 겨울은 온도 또한 비슷하기 때문이다. 

쌀과 같이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고 출수후 35-45일이 지나면 추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같은 땅을 빌리는 댓가는 반반으로 나눠 가져야만 했다. 

아코르에서 쌀 100kg 가격이 약 1200루피(한화 약 25000원) 밀가루 100kg가격이 약 1000루피로 거래되고 있으니 

농번기때 온가족이 농사에 메달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들은 카스트와 가난으로 인해 현대판 소작농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땅이 없는 사람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땅을 가진 사람들은 그 땅을 그냥 나지로 둘 수 없으니 땅을 제공하는 조건들. 서로가 필요하는 조건들이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착하기 까지 꽤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노동력만 착취당하고 굶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카스트 전쟁을 치룬 후에야 안정화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을 할 수 있고 수확량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했던 사람들. 

그들은 소작농이었다. 

 “옛날에는 많이 죽기도 했지. 굶어죽는 사람도 있었고, 수확량을 못맞춰서 지주가 고용한 사람들에게 쥐도새도 모르게 삶을 달리한 사람들도 있었지.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진거야. 암…”




 수확철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소중한 노동자원 @2011




 새로운 작물을 위해 밭을 갈고 있는 모습 @2011



 베어낸 벼들을 머리에 이기 위해 정리하는 한 여인 @2011


 물 없이 벼를 심고 있는 모습 @2010


 기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산소가 필요해! @2010



 올해 수확은 어떨지 고민하는 여인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