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앞에 용감할 수 있어요?

2012. 3. 25. 14:51일상다반사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을때 비행기가 보이거든 손을 흔들어 주세요.
떠나는 자에게 축복을 남아있는 자에게 위로를 위해서요.
다시 가슴이 뛸때 조금더 여유로운 웃음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행복은 관계에서 시작해서 관계에서 끝을 맺습니다.
지금 함께인 가족, 친구, 연인 모두 우리는 관계라는 연결로 이루어져 있죠. 그 안에서 우리의 진실된 행복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 사실들이 그것을 훼손하려 하죠. 하지만, 진실은 변하지 않듯 우리의 행복은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철저히 혼자였던 라플란드,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오로라가 마냥 신기했고
'내가 이런 풍경을 볼 수 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지요. 그건 사실에오는 행복이었어요.
이내 오로라가 익숙해지면, 아무 감흥이 없이, 다시 혼자임에 아려오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지요.
만약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보고 있었다면,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보고 있었더라면 오로라는 보는 것이 사실에서 오는 행복이지만,
내 옆에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이 진실에서 오는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3년에 걸쳐 매년 방문했던 아코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코르에서는 오로라 같은 기쁨고 황홀감도 멋진 풍경도 흔한 유적지도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사실에오는 행복이 아닌 진실에서 울려온 행복이 있었어요.
제가 그곳의 친구K과 맺은 인연, 그리고 그 마을 안에서 비록 가난했고 가진 것 없었지만 함께여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무도 모른채 그 마을에 갔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돌아왔다면 그곳에서 있었던 시간은 지옥과 같았겠지요. 그런거에요.

쇼핑센터에서 쇼핑백 꾸러미 가득 물건을 사며 소위 '신상'인 물건들을 구입할때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질리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때 설레며 구입했던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
쓰레기가 되기도 하고 집의 어느 한 구석에 쳐박힌 채 빛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그때 또 다른 '신상'들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겁니다. 진실된 행복은 쇼핑에서 오는 행복감이 아니에요.
어떤 것도 그 자리를 대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것이죠.

물질만능, 황금만능이 당신의 행복을 충족시켜주고 있다면 그건 가장 위험하고 위태한 행복입니다.
며칠전 참 좋은 형님과 막걸리를 한 잔 했습니다. 비가오는 가운데 알콜이 들어가니 저를 사랑해주는 조카들이 보고 싶더군요.
형님께 무례한 부탁을 했습니다.
"형님 우리 지금 당장 형님댁에 전화해서 형수님과 아이들 불러 노래방 갑시다"
형님도 흔쾌히 받아주셨고, 고맙게 형수님도 피곤하신 가운데 저를 위해 나와주셨습니다.
노래방에서 아이들이 제가 들어본 적도 없는 아이돌 노래를 부르는 노래에 그냥 마음을 맞겼지요. 아주 행복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관계에서 시작된 우리의 진실된 행복의 한 단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제 11살의 조카가 시끄러운 노래방 음악소리 사이에서 문득 제게 묻더군요.
"삼촌! 삼촌은 사랑 앞에서 용감할 수 있어요?"
황당했습니다. 실컷 노래 잘 부르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11살 초등학생에게 받은 질문 치곤 조금 당황스러웠죠.
그래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웃으며 왜 그걸 묻느냐고 종용만 했을 뿐이었지요.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T군은 짝사랑하는 소녀 H양이 있었거든요. 평소에 자주 대화를 나눴기에 노래 부르다가 H양이 떠올라서 내게 물었나??등등
여러 생각이 스쳐갔지요. T군이 어느 날 제게 해준 말이 생각나요. 평범한 패스트푸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T군아! 너 H양이 어디가 그리 좋아? H양은 널 전혀 좋아하지 안잖니."

"삼촌, 그건 상관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거에요.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문자보내도 답장도 없어요. 며칠 후면 생일인데 초대하고 싶어도 오지 않는 답만 받았어요. 삼촌 그거 알아요? 저 H와 4년동안 같은 반이에요. 그래도 볼 수 있으니까 좋아요."

제가 11살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던거 같습니다. 그저 어디가서 놀까? 아 엄마가 밥은 차려줄까? 시시콜콜했던 고민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의 11살은 많이 성숙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더군요. 오히려 그 아이의 답과 질문에서 제가 배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T군이 나의 답을 이해할 수 있을때 저의 답을 보여주고 싶네요.

'삼촌, 사랑앞에 용감할 수 있어요?'

'삼촌은 참 바보란다. 용감하다고 생각했지만 늘 성급하고 머뭇거렸던 거 같아. 그것이 사랑이든 어떤 다른 일이든. T야 너가 생각하는 용감함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니? 사랑이란거 여전히 어렵지만, 세상을 살면서 단 한번도 오지 않을 것일 수도, 여러번 올 수도, 혹은 단 한번 밖에 오지 않을 수도 있어. T가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번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나는 경험을 하고, 단 한번 심장이 멈춰서 이 세상과 이별을 해야하지. 그 둘 사이에 두번, 세번은 없어. 그러니 생각해보렴. 눈앞에 주어진 기회에 언젠가 다시 올거야 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져선 안돼. 그건 용기없는 행동이지. 시간이 흘러 깨달아버린 것들은 책을 다 읽고 덮어버린 책과 같은 것이란다. 즉, 그건 후회와 회환 뿐이겠지. 그런데 기회가 주어졌을때 용감하지 않으면 그것이 가장 어리석고 멍청하고 바보 같은 것이야. T군아 지금 니가 머뭇거리고 용기가 없더라도 마음이 가는대로 하렴. 마음이가는 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마음대로 하고나서 후회하는 것이 훨씬더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해." 


시간이 다 됐나봅니다. 올해 1~2월까지는 마음의 비행기를 참 많이 타버렸어요.
작년 12월 아코르에서 돌아와서 3년의 기록들을 잘 정리해 사진전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준비도 하려고 했고, 사진 선택에 여러움도 있는 찰나 3개의 출판사에서 출간을 제의 받았습니다.
그 중 가장 이름값이 무거운 출판사를 택해 작업을 했고(그래서 블로그에 아코르 3번째 사진과 글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결과는 출시 되지 못했습니다. 뭐 제 원고가 마음에 안들었나보죠.
그래서 참 바쁘고 기쁘고 즐겁거운 시간도 좌절과 슬픔의 시간이 아주 짧은 시간에 교차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상처라는 것은 스스로가 주고 스스로 받아오는 거 아닌가 싶어요.

저는 지금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조금 늦어졌지만, 아무것도 아무 목적도 없어져 버린 그 곳으로 아주 짧은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삼각대를 가지고 가는 여행은 참 오랜만입니다.
짧은 시간에 급작스레 찍어야 했던 스냅 사진이 아닌 시간을 기다리는 사진을 찍어보려 합니다.
뭐 결과물은 알 수 없지만요.
저는 용기있게 비행기에 올라 타려합니다.
아무도 만날 수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저와 대화를 나눠보려 합니다.


행복은 관계 속에 존재하고 사랑은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결국 행동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겠지요. 여러분 용감해집시다!
노래 가사 처럼 '무관심한 가슴 가질 수 있게'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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