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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일상들
아마 넌 나를 기억하고 있을런지? 하누만 축제에서 너를 보았지. 다른 아이들은 신나고 들떠있는데 반해 너는 너덜너덜했던 옷가지며 먼길을 걸어오면서도 신지 못했던 신발 그리고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있었지. 어렵게 수소문하여 너에 관해 조금 알게 되었단다. 엄마의 얼굴도 모른채 살아왔고, 돈을 벌로 먼 도시로 떠나버린 아버지 마저 몇 년 전 사고로 잃어버리고 네 보다 몇 살 위였던 누이와 함께 살아가던 너. 작은 체구와 어린 나이에 혼자 힘으로 보따리를 머리에 지고 삶을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지. 아마 동병상련이었는지 모르겠구나. 그 마음을 모두 이해하기란 무척 어렵지만, 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까만 숯덩이가 되어버렸을 네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너와 비슷한 마..
⬆ 인도의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그 소녀의 마음 속의 신분은 언제 사라질까? @2011 아코르 II. 소박한 일상뒤의 눈물 3. 초대 받지 못한 자. 언터쳐블 안개가 자욱했던 그 호수 그리고 아주 작은 오솔길, 그 길은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심한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내보이지 않던 그 길 끝에 한 가정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건장하고 다구진 체격의 한 남자와 수줍은 듯 내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는 그의 식솔들이었다. 처음 본 그의 집은 마치 곧 무너질 듯한 형태의 대나무로 만들어 놓은 기둥과 그 위에는 짚으로 겨우 비만 피할 수 있게 해둔 지붕, 그리고 싸늘한 가을과 겨울철에는 바람이 집 안으로 들오고도 남을 구멍들이 즐비했다. 이 한 채의 집에 4명의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그가 살고 있었다...
⬆ 허름한 간판이 BK 스튜디오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작은 상점. @2011 II. 소박한 일상뒤의 눈물 2. 그래 잘 될꺼야(BK 스튜디오를 열다.) 카메라로 사진 찍어주는 것외에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현재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은 사진을 찍는 일을 그들에게 가르쳐주는 일고, 그것 밖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실망도 없지 않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있을 거란 희망은 늘 품고 있었다. 그래서 많이 둘러보고 곰곰히 생각한 결과 나는 내 친구에게 사진관 사업을 제의했다. 돌아온 답은 준비를 위해 모아둔 돈이 없다는 답이었다. 다르게 보면 얼마되지 않는 돈이지만, 한 가정이 먹고 사는 문제의 사활이 걸린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이 녹록지 않지만, 반드시..
⬆ 손으로 직접 벼를 베고 있는 소년 @2011 II. 소박한 일상뒤의 눈물 1. 현대판 소작농의 삶.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전환된 역사는 그리 오래지나지 않았다. 민속 놀이에 나올 법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 글귀를 요즘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의 가정환경 또한 농사와는 전혀 관련없었고, 낫으로 벼를 베어본 기억도 없다. 기껏해야 어린 시절 고추농사를 짓고 계시던 고모님댁을 방문해 고추밭에서 고추 몇 번 따본 것이 전부인 나의 농사와 관련 모든 기억이다. 그 만큼 도시화에 익숙해진 세대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코르에는 시골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전혀 산업화 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에 의지해 자급자족의 형태로 살아온 것이었다. 아코르에서 농사..
⬆ 시장에서 물건을 둘러보고 있는 아저씨. @2011, Akaunr아코르 I. 나도 당신도 모르던 인도 시골, 아코르 9. 7일장이 서던 날. 일요일 오후, 따분함을 못이겨 안절부절 하는 나를 불러세웠다. “일요일에는 늘 장이 들어서지. 어때 구경갈래?” 장날은 볼 수 없었던 많은 물건들을 머리에 이고 보따리 장사꾼들이 마을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한적한 공터에 진을 치는 날이었다. 꽤 많은 종류의 채소들, 코끝을 진동시키는 수가지의 향신료들, 화려한 색을 좋아하는 여인들을 위한 각종 장신구등 생각보다 많은 물건들이 아코르 주민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일주일을 기다려 구입해야할 목록들을 정하고 기다리는 장날. 역시나 엄마나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나온 아이들은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 앞에 떠날줄을 모르고 ..
⬆ 30대중반의 세친구, 한마리는 직화로 구웠다. 2011년의 어느 겨울 I. 나도 당신도 모르던 인도 시골, 아코르 7. 내 생애 최고의 생일 “다시 오지 않을꺼지? 내 생각이지만, 넌 다시 오지 않을 같아. 하지만 우리 모두 좋은 기억이었어.” “아니 다시 올께. 기다리고 있어.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현대 문명에 젖은 내가 적응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하지만 두번 고민하지 않고 약속을 했다. “그래 꼭 다시 아코르로 돌아오길 바라. 그리고 다음엔 꼭 내게 생일파티를 해주고 싶어. 나, 키쇼르, 어닐 그리고 너” 그런 약속을 하고 떠났던 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우리가 함께 했던 일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때 즈음 우리는 다시 ..
⬆ 어때요? 비록 인분이 좀 보이지만 자연화장실 치고 아주 멋지죠? @2010 아코르의 여름날 I. 나도 당신도 모르던 인도 시골, 아코르 5. 화장실이란 세글자에 내포된 많은 의미 아이가 두발로 딛고 일어선다는 의미는 세상을 향해 바로 서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아코르에서 아이가 두발로 혼자 일어 설 수 있는 일처럼 화장실을 혼자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그만큼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유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들어왔으면 나가야 하는 당연한 생리적 현상이 며칠 째 정채되고 말았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화장실 어떡하지?” 돌아온 대답은 “노 프라블럼”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아이들처럼 마을 신작로 앞에서 쪼..
⬆ 2009년 란주가 결혼을 위한 간택 절차를 위해 앉아있었다. I. 나도 당신도 모르던 인도 시골, 아코르 4. 결혼할까요? 아코르의 문화는 오래 전 한국의 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 남성들은 가부장적이고, 여성은 언제는 가정주부로서의 역할만 강요되고 있었다. 그리고 딸은 언제나 아들보다 결혼 비용이 많이 소비되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우대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아코르에도 결혼 지참금이 있었던 것이다. 지참금은 남자의 능력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남자가 대학을 나오고 대도시의 샐러리맨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동차 한대 정도의 지참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아코르는 카스트 문화가 아직 모두 사라지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브라만은 브라만끼리만 결혼을 하고, 각 카스트는 같은 카스트만 결혼 할..
⬆ 먹고 있던 짜파티가 부러웠는지 달라고 손을 내밀던 씨야. I. 나도 당신도 모르던 인도 시골, 아코르 3. 짜파티와 짜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여행을 떠날 때 한국 음식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언제나 현지식으로 적응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맛기행을 위해 떠나는 여행도 아니지만, 그 고집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늘 한 달이 넘어가는 그 시기가 고비였다. 시큼한 김치, 구수한 된장 그리고 무엇보다 지글지글 판 위에 구워진 삼겹살과 소주 한 잔. 어찌 흐르는 피는 속일 수 없나 보다. 하지만 이 곳에선 모든 것이 불가능하기에 빠르게 단념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아코르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었다. 중국 옆 조그마한 나라 정도로 인식하고..
⬆ 2010 베니파티의 해질녘 I. 나도 당신도 모르던 인도 시골, 아코르 2. 베니파티의 오아시스 난잡하게 붙어 있는 상점들 그리고 요상한 인도만의 거리 냄새, 빵빵거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 한 꾸러미씩 머리에 이고 시장을 보는 사람 풍경이 어우러지는 모습들이다. 아코르로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마치 여권검사를 하는 이민국처럼 거쳐야 하는 곳이 바로 베니파티였다. 아코르에 머물 때면 언제나 일주일에 몇 번씩은 이곳을 와야만 한다. 하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길조차 쉽지 않았다. 베니파티로 나가는 방법은 합승택시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나가야 한다. 합승택시는 시간이 일정치 않아 언제 아코르에서 베니파티로 가는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소소한 생필품들이 필요할 때, 아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들을 준비할 때..
⬆ 생각에 잠긴 2011년의 밀리. I. 나도 당신도 모르던 인도 시골, 아코르 1. 처음. 그 설렘과 두려움 인도를 여행하던 어느 날, 바라나시에서 한 인도인이 다가와 내게 얼굴이 슬퍼 보인다며 말을 건네왔다. 다른 인도인들과 다르지 않게 행색은 평범했지만, 그의 첫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빠르게 내 머릿속에는 ‘인도에도 사이비 종교가 있었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두를 사칭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구걸이나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 목적으로 오렌지 빛깔의 사두의 복장을 하고 있어야 정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두의 복장과는 거리가 먼 청바지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나의 길을 걸었다. 걷다가 다시 그를 마주치게 되었다. 이..
밀리야? 그렇게 물으면 언제나 응? 하고 돌아보던 너였지.이제 삼촌이 너에게 약속했던 것들을 포기하려해.4년이란 시간동안 너에게 많은 말을 했고, 너를 꼭 내 집에 데려와서 저녁 7시가 넘어도 밝다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었어.어떤 노력과 발버둥도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았어.미안해 밀리야.삼촌? 꼬레아? 미? 고? 라고 하던 너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어. 이제 삼촌이 포기한거야. 지금이면 꿈나라에 허우적되고 있을 너에게 삼촌이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니?밀리야.미안하다. 삼촌이 많이 미안해. 지금이면 그곳은 많이 더울테고 또 모기와의 전쟁이 시작 되었겠지?이곳은 따스함이 내려 앉은 봄이야. 밀리야. 혼자 뒤에서 울지말고 ... 라는 말을 이제 못하겠다.얼마나 울어야 할까?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