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던 날 #9

2012. 3. 13. 07:54일상다반사/오래되던 날






삭풍이 불어오던 혹독했던 겨울이 또 하나의 기억속으로 사라져 가는듯 했다.
하지만 봄이 오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듯 꽃샘추위는 다시 세상을 꽁꽁 얼리고 말았는지 모르겠다.
깊은 잠에서 일어난 것 같은 몽롱한 기분으로 편린되어버린 기억의 조각 하나가 떠올랐다.
캄캄한 어둠이 가시지도 않은 새벽, 검은색 자동차는 요란한 소리도 없이 어둠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 참의 시간이 지나자 빛이 어둠을 몰아내며, 세상에 모든 것들이 '나 여기 있어요!'라는 소리를 내지르듯 하나 둘 씩 모습을 띄기 시작했다. 

역시나 아직 겨울은 내 발걸음을 반기고 있었고, 기억의 한 조각으로 선연하게 떠오르게 해주었다.
그곳에 서서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는 곳에서의 그것은 추억속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추억은 어떤 추억이었을까?
 








기억이라는 놈은 가끔 잔인하게도 현실속에 허덕이는 나를 이겨버릴 때가 있다.
어떤 기억이었을까? 되집어 본다. 조각난 내 기억과 추억을 바닥에 떨어져 있지 않는가 하고...
온연하게 보존되지 못할지라도, 단 한 조각의 기억이라도 흩어져 있었다면 주워 고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으로.
'남았다면 다행이었을텐데' 라는 절박해보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기억의 조각을 마음의 쌀자루에 마저 주워 담고 추억을 만들어본다. 추억은 눈물이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추억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 일에만 부여되는 조금 특별한 것이다.
오직 그때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어떤 특별함. 

흥미롭게도 추억이라는 놈은 기억이라는 놈과 조금 다르다. 
기억은 재현될 수 있어도, 추억이라는 놈은 다시 재현 될 수 없는 상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억의 조각이 떠오르면 가끔 미소지을 수 있고, 하염없이 눈물이 되기도 하나보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라쇼몽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떨려 숨을 잘 못 쉴 기억, 충만한 행복감을 가질 수 있었던 그 추억.
내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던 것들.

하지만 현실은 몸통이 잘려진 나무 한 그루가 지금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고 있었다.
어디에 있을까? 추억속의 그 모든 것들은.

한 장의 사진으로도 재현되지 않는 내 소중했던 시간.
그 추억을 떠올리기엔 너무,
오래되던 날. 


@산정호수,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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