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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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를 지웠을지라도.
무심코 지나던 그 짧던 찰나에도, 한마디 던지지도 못했던 그 산산히 부서진 기억이라도, 이미 흘러버리고 나를 지웠을지라도.
2015.02.05 -
행복의 조건
그 날. 길을 떠나온지 며칠 째 비가내리지 않았지만 그 높은 호수에는 비가 내릴 조짐이 보였다. 날렵하게 생긴 배를 통째 빌려 타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출발했다. 어둑했던 그 호숫가 위의 하늘은 내 마음의 걱정을 만들어 두기에 충분했던 시간이었다.멀리 구름 위로 보일랑 말랑 하던 해는 구름의 기운에 짓눌려 결국 그 모습을 내게 보여주지 못했고, 비라는 슬픔의 대변자에게 오늘이라는 시간 앞에 드러내지 못하는 줄로 알았다. 내가 탔던 배는 사람의 힘과 비견되지 않은 마력으로 환산 할 수 있는 강력한 일본산 엔진을 장착한 기계 그 자체였다. 그 기계는 지름이 20여km나 되는 인레 호수 곳곳으로 나를 안내했지만, 내 마음은 편치 못했다. 날씨도 음산했고, 흩날리는 빗방울이 마음 한 구석을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
2012.11.20 -
청소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꽤 떨어진 곳에 보로부두르라는 사원이 있습니다. 이 곳은 워낙 유명세를 치르기에 수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지요.유명한 관광지 답게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투어차량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 일출을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감상하고다시 족자카르타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보로부두르 사원 근교 크고 작은 사원들을 둘러보고 있던 찰나 해가 뜬 아침에 작은 사원을 청소하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쓰레기를 줍고 먼지를 털어내고 직업 정신으로 무장한 한 남자가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살아가면 해왔던 일 중에 늘 핀잔을 받았던 일은 청소였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수 시간을 들어 청소를 하고 난 후, 손님이 집을 찾았을때 들었던 가장 안..
2012.11.13 -
애정의 조건
애정의 조건. 제목을 정한 후 무언가를 써내려가야 하기에 너무도 어려움을 느낍니다. 결국 진솔함이 답이겠지요.여행이 끝날 즈음이었어요. 달라라는 곳으로 배를 타고 떠났고 수 많은 관광 가이드겸 자전거꾼들에게 시름을 해야했습니다.달라에서 저는 제2의 아코르를 찾으로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얀마라르는 나라가 너무 폐쇄적이었고 개방된 곳만 허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런데 한 자전거꾼이 제게 그러더군요. "태풍으로 인해 100여명의 목숨을 잃었고, 이 곳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소개해줄께. 어때?" 라고 말이죠. 그 가이드겸 자전거 꾼은 그곳으로 열심히 페달을 굴렸습니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폐쇄적이고 거짓으로 사람에게 혼돈을 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솔직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12.10.29 -
엄마의 마음
여행이 지겨워 질 무렵이었다. 미얀마의 불상들이 비슷하면서 달랐고, 어쩌면 내 여행도 비슷하면서 다른 그런 여행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미얀마 북부 바간의 어느 불탑을 둘러보던 아주 무더운 날이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뜨거운 태양빛을 피해 발바닥에 물집이 들 정도였던 날. 그 뜨거움이 두려워 나는 그늘로 나를 숨겼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훔치며 불상을 바라보고 있었다.한 중년이 넘은 듯한 나의 여인이 불상을 향해 두손을 꼭 맞잡고 지긋이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그때까지 성당, 절등 종교적 장소에 의례 있는 흔한 풍경이었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지 지나지 않아 그 작은 아이가 그녀에게 뛰어왔다.뜨거웠던 날씨 탓에 연신 그녀의 작은 딸에게 물을 먹이며 땀을 닦..
2012.10.25 -
그 남자
조용히 파도만이 춤추는 바닷가에 단 하나의 희미한 그림자가 멀리서 눈에 들어왔어.가까이 다가가 본 모습은 조금 수척해보이는 한 남자였지.낯선 곳에서 누군가를 따른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배짱이 필요해. 물론 상대인 그도 그럴지도 모르겠어.그는 이방인인 나에 대한 경계로 표정은 굳어있었어 하지만 이내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그였지. 나는 그런 그를 조용히 몇 시간을 따라다녔어.파도소리만 무섭게 들려왔고 그의 표정도 좀처럼 풀리지 않았어. 몇 번의 그물질을 하던 그가 결국 다시 그물을 주섬주섬 말아넣고 있었지.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어.'나 때문에 실패한것인가?' 라는 자책감도 있었지만, 물고기를 잡지 못한 아쉬움이었던 것 같아. 다시 혼자 '결국 포기 한 것인가?'라는 생각..
2012.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