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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위로

런던 커피

비케이 소울 2012.05.18 18:03







처음이었어. 나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먼 타국으로 떠나보는 여행이 말이야.

근심과 고민을 가득 가둬둔 배낭을 메고 떠났지. 하지만 가고 싶었던 곳은 런던이 아니라 파리였어.

그냥 환상이었던 거지. 지금도 파리에 대한 환상이 있어. 그냥 고풍스러운 도시의 풍경을 동경했고, 현실 불가능했던, 

마치 드라마에서 나오는 듯한 일들이 일어나길 기다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처음 도착한 곳은 파리가 아닌 런던이었어.

우여곡절을 겪고나서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어. 모든 것이 낯설었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들어왔어. 

어디에서 자야 할지 무얼 먹어야 할지 같은 생존에 대한 걱정은 템즈 강 변의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식었어.

유유히 흐르던 강물 그리고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풍경 그리고 고즈넉함이 물씬 풍기는 그 분위기에 취했던 거지.

그땐 사진에 대한 압박감도 없었고 누르고 싶으면 셔터를 눌렀고 누르지 않아도 부담이 없었어.

그래서일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속에 지금 남아 있는 사진은 그리 많지 않았어.

사진이 없으니 머릿속으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어쩌면 사진이 주는 현실감보다는 기억을 걷는 시간이 더 행복할 때도 있으니까.


이른 시간이 아닌 시간임에도 커피를 마시고 싶었어. 

커피를 원래 마시지 않았지만 마치 이곳에서 마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느낌 있잖아.

런던 시청사 근처의 Paul이란 카페에 들러 메뉴판을 봤어.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커피는 늘 갈색이나 파란색 캔에 담긴 것 혹은 일회용 커피만을 마셨으니 그 많은 종류의 커피를 알 수가 없었어. 

주머니를 뒤지니 1파운드짜리 동전 하나 그리고 잔돈 몇 푼이 전부였어. 

메뉴판을 보고 가격이 제일 싼 놈으로 주문했지. 그때까지도 에스프레소가 뭔지 몰랐거든.

내 느낌에 소주잔만 한 크기의 컵에 커피를 내주는 거였어. 그리고 속으로 외쳤지.

"이런 아무리 제일 싼놈으로 주문했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고 다시 템즈 강으로 향했어. 한 모금 마시니 '이 쓴 걸 돈 주고 마셔야 하나?' 그냥 울화가 치밀었지.

부랴부랴 반쯤 남은 생수통에 에스프레소를 넣고 섞었지. 그래 '아메리카노'가 되는 순간이었어.

새로움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적응이라는 것이었지. 물론 한국에서 에스프레소를 아메리카노를 마셔봤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모르던 것에 대한 새로움은 늘 적응이라는 단어가 찾아오게 마련이었어.


시간이 흘렀고 나는 거의 매일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고 있어. 늘 같은 아메리카노.

런던에서 배운 일자무식으로 배운 경험은 아메리카노 홀릭을 만들었고, 물 이외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커피와 그 향이 좋아지게 된 거였어.

강한 양념맛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그 커피라는 개념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어. 

여전히 아메리카노가 쓰다고 느껴지고 있던 찰나 문득 느꼈어.

쓴 커피도 맛을 음미하다 보면 달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어. 겉만 살짝 맛보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이겠지.

깊은 커피 맛을 느끼려면 오래 입안에 머금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사람도 그렇겠지? 

겉만 보이고 속을 철저히 숨기거나, 겉만 간 보고 이 사람을 모두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일지도 몰라.

지금 나는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브릿지 사진 한 장을 보며

전혀 달달하지 않은 커피 한 잔과 템즈 강에서 기억을 떠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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