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광복절 8.15

2012. 7. 4. 09:30사소함으로부터의 행복/1. 나도 당신도 모르던 인도 시골, 아코르

 아이들은 그 나라의 미래다. 행사 시작을 남녀 한쌍의 아이들의 기도로 시작했다. @2010년 아코르




I. 나도 당신도 모르던 인도 시골, 아코르

6. 인도의 광복절 8.15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 없이 자라왔다. 할아버지는 내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1890대에 태어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들은 이야기로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었던 그 시기 할아버지는 일본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고, 큰 고모님은 타의에 의해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는 많은 고생을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 오셨고, 6.25를 피난 다닌 후에야 지금의 고향에 자리 잡고 사실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20여년 전, 큰 고모님은 연세가 70이 넘으셨지만, 일본어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것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로 하여금 역사 공부에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심심치 않게 역사에 관련된 공부를 혼자해 본 적도 있었다. 일제 치하의 수 많은 징용등에서 부터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까지. 그런 이유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썩 친근하게 다가 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매년 8월 15일은 태극기가 계양되고 일본으로부터 치욕스러웠던 식민통치의 종식하던 날을 기념하는 광복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도의 독립기념일은 우리보다 2년 늦은 1947년이지만 8월 15일이라는 날짜가 우리와 같은 날이었다. 
오랜기간 영국으로부터 식민 통치를 받았고 종교적인 문제로 파키스탄과 분리 독립된 날이 인도의 독립기념일이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위대한 영혼이라 칭송받는 마하트마 간디는 분리해서 독립하는 것을 반대했고 
그 과정에서 힌두교도에 의해 암살 되었던 것이다. 어찌 우리와 많이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우리는 정치적인 문제로 남북으로 갈리게 되었고, 
인도는 종교적인 문제로 동서로 갈리게 되는 묘한 상황, 그리고 간디와 김구 선생의 암살까지. 며칠 전부터 마을은 부산해졌다. 

“15일이 독립기념일이거든. 독립기념일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이때 즈음이면 바쁘지. 행사에 사용될 국기들도 만들어 둬야하고, 사람들과 나눠 먹을 음식 준비도 해야해.” 

우리와 비록 2년 차이가 나는 독립기념일이긴 하지만, 그들의 독립 기념일 행사는 종교적인 축제와 같이 보일 정도로 각각의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 만큼 돌이켜보면 TV에서 독립기념일 행사하는 것을 제외하고 집집마다 태극기 계양했던 것이 전부였지 각 마을이나 소규모 읍, 면 단위의 자체 행사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60년이 흐른 지금 아코르에서는 TV보급이 수월하지 않아 마을 단위의 행사를 치르는 것이 이해도 되며 존경심 마저 들게 했다. 
요즘 광복절 국기 조차 계양하지 않는 집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실감하면 더욱 스스로 고개가 숙여진다. 
특별한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단순히 국기 계양에 그치지 않고 작은 시골 마을에서 대대적인 행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동사무소 정도와 비슷한 사무실의 앞마당에는 인도의 영토를 표현 하는 지도가 인도국기에 사용되는 색으로 그려지고 그 한 가운데 
대형 인도 국기를 계양하는 것으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 분위기는 사뭇 엄숙하고 진지하였다. 

많은 마을 사람이 나와 기념하는 그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배회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한국에도 독립기념일이 있는지 물어왔다. 

“물론이죠. 날짜까지 완벽히 같은걸요.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후 남북으로 나누워졌죠.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동서(파키스탄과 인도)로 나누워진 거잖아요.” 

라고 답을 하니, 잠시 후 사람들은 깜짝 놀라 듯 나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한국의 역사를 알고 있다는 듯 다시 맞장구 치는 한 사람. 

“맞아요 맞아. 우리는 무슬림인 파키스탄과 갈라진거죠. 당신네는 남북으로 갈라져도 국가 이름은 같죠? South KOREA, North Korea. 남북 관계는 어때요? 우리와 파키스탄 하고 비슷한가요?” 

아코르에서 가장 심한 욕이 ‘파키스탄으로 가라!(쩔로 파키스탄!)’ 이라고 한다. 
힌두교와 무슬림간의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이 어떤 관계였는지 궁금했나 보다. 
우리는 정치적 이해 관계로 나누어진 것이고 그들은 종교적 이해관계로 두 나라가 나누어 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일치 하지 않지만 공통점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왠지모를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독립기념 행사를 천천히 더 둘러 보았다. 마치 우리의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듯 마을의 이장님은 무언가를 한 참을 읽어내려 갔다. 그리고 깃발을 뽑아 마을 힌두 사원으로 이동하여 다시 한번 인도 깃발을 계양했다. 
왜 국기를 사원에다 다시 계양하는 의미가 궁금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우리의 독립을 신께서 내려주셨으니 신께 감사 인사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꺼 같아.” 
라고 답을 했었다. 정치 논리보다 종교가 더 인도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나라라고 알려진 인도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 후 작은 국기 나눔 행사가 이어졌다. 

광복절이 공휴일인 아코르에서도 학교는 수업을 하지 않는 대신 아이들은 독립기념 행사에 참여해야만 한다. 
작은 손마다 사원에서 받은 인도 국기를 들고 깨끗한 교복으로 환복 후 약 1시간 동안 아이들은 독립 기념 노래를 열창하며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며 다시 사당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조촐한 음식들을 마을 사람 모두와 나누는 것으로 행사는 끝이 난다. 

그 풍경은 우리의 광복절 기념행사의 하나인 아우네 장터를 재현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그 만큼 국가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신의 대한 감사함을 모두 함께 의미를 찾고, 아이들에게는 그 의미를 가르치는 산 교육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떨지 자연스레 떠올랐다. 집집마다 계양되었어야 하는 태극기는 찾아 보기 힘들고 하루 쉬는 날로 인식 되어버리진 오래인 우리 광복절의 현주소가 아닐까 한다. 독립의 의미와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생각할 시간은 있었는지 반성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자랑스런 국가를 마을의 남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부른다.




 마찬가지. 행사의 마지막은 아코르 힌두사원에서 끝을 맺는데 역시 국가로 끝을 맺는다.



 아이들은 아침일찍 국기를 들고 마을을 돌며 광복절임을 자랑스러워하며 기뻐한다.



 카메라 앞에서 잠시 멈춰선 아이들, 역시나 입에선 국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마을 한 바퀴를 돌면 허기가 진다. 꽤 긴 거리를 걸고 온 아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나누어준다. 한 끼 해결을 하기 위한 처절함도 내포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