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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일상들

노던 라이트 본문

여행/낯선, Lapland

노던 라이트

비케이 소울 2012.03.09 06:50












이나리에서부터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길은 모두 눈으로 뒤덮혀 있었고,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나무와 눈 그리고 간간히 달려가는 자동차 뿐이었다.
적막감이 온몸을 감쌌고, 버스에 몸을 의지한 채 북쪽으로 올랐다. 북으로 북으로 올라 노르웨이로 넘어가는 단순한 루트가 그리 쉽지 않았다. 
겨우내 내린 눈으로 국경은 폐쇄 되었고, 나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나는 듯 했다. 어디로 가야 했을까?
결국 버스는 어느 한 적한 곳에 나를 내려주었고, 그리 북적이지 않는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 식당은 라플란드의 분위기와는 다르지 않았다. 살점이 흘러 넘칠 듯 한 주인은 메뉴판을 들고 나와 너스레 웃으며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을 했고, 가장 저렴한 햄버거와 콜라 그리고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 
배가 고팠는지 햄버거 한 개는 삽시간에 흔적도 남지 않았고, 연거푸 콜라를 마셨다. 
이제 부터 많은 질문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는지. 왜 라플란드로 오게 만들었는지.'
하지만 이 무엇보다 고민하게 만든 건, 오늘 내가 어디서 두발을 뻗고 자야하는지가 문제였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호텔이나 잠 잘 곳이 있나요?"
넉넉한 몸집의 여자 주인은 두번 고민하지 않고 지도를 펴들었다.
"이 곳이죠. 여긴 카마넨(Kaamanen)입니다. 여기서 부터 수 km 정도 가면 캠핑장이 있어요. 겨울에는 캠핑장을 오픈 하지 않아요. 가족 단위의 방갈로도 있지만, 혼자 지내기엔 가격이 비쌀 겁니다. 아마 겨울에도 호스텔은 운영할 꺼에요. 전화를 해보고 가세요.
아니.. 원한다면 지금 내가 전화 해볼까요?"
사실 절박한 질문이었는데, 주인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만약 묵을 곳이 없다면 이나리나 이발로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곳에서 노숙은 있을 수 없었으니까.
잠시 후.
"지금 전화를 받지 않네요. 꽤 걸어야 할 겁니다. 여기서 버스도 있지만, 오늘 버스는 저녁 늦게나 올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걸어 봐야겠네요."
"행운을 빌어요."
점심도 먹었겠다 저녁에 오는 버스가 한 대 있다고 하니 걷다가 걷다가 힘들면 노상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식당에서 나왔다.
발걸음이 가벼웠는지, 라플란드의 풍경을 보고 걷던 길이었는지, 가는 길 자체도 설레였다. 방목하고 있던 순록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차와도 인사를 하고, 지저귀는 새소리에게도 인사하고, 오래동안 라플란드에서 살아온 나무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그 처럼 살아가는 시간이 이렇게 설렘의 연속으로 오는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났고, HOSTEL & CAMP 라는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걷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몇차례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은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집안에 불은 켜져있었으니 무작정 기다려보기로 했다.
멀리서 낯이 익은 한국차 한대가 들어왔다. 디젤엔진의 소리가 귓가에 가까이 다가왔을때 운전석과 조수석을 나란히 앉은 노부부였다.
"오늘 제가 여기서 묵을 수 있습니까? kaamanen 식당에서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물론이오. 젊은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추운데 어서 들어갑시다."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내게 방을 안내해주었다. 북유럽식 평범한 가정집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짐을 묵을 방에 대충 넣어 놓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 받았다. 
"우리는 식사 제공을 하지 않아요. 뭐 먹을 거리를 가지고 오셨오?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가?"
"네 아무 정보도 없이 왔어요. 물론 먹거리도 없지요. 며칠을 머물고 싶은데 식당까지 너무 멀더라구요."
"그렇지요. 아무래도 여긴 여름이면 캠핑을 하러 많이 와요. 겨울에는 거의 찾는 사람이 없어요. 미니 슈퍼마켓을 우리가 운영하지만, 먹을 거라곤 인스턴트 스프나 파스타, 통조림 음식이 있어요. 그리고 오늘 밤은 아무래도 오로라를 볼 수 없을 거 같아요. 오로라 본 적 있어요? "
할아버지는 오로라때문에 내가 라플란드에 온 줄 알고 계셨다. 
"네, 수 없이 봤습니다. 라플란드에서 벌써 열흘이 넘었어요. 그 중 약한 오로라까지 포함해 4-5일은 본 것 같아요."
"허허허. 다행이네. 오늘은 오로라가 나타나지 않을거 같으니... 푹 쉬어요."

차 한잔을 마신 후 할아버지께 인스턴트 커피 몇 봉지를 받아 들고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그 동안 라플란드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나보다. 생각했던 일몰 시간보다 훨씬 해는 길어졌다. 오후 3시가 넘어가도 완전 어둠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날 밤 오로라가 나타지 않을 정도로 하늘은 흐렸다. 이나리까지의 사진을 옮겨두고, 가져온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내려 앉은 라플란드의 밤. 낮동안 구름에 가려진 하늘은 해가지면서 열리는 듯 했다. 초롱초롱 떠 있는 별. 

시계는 10시가 숨넘어가듯 꼴깍 넘어가는 찰나였다. 그리고 먼 하늘에서 푸른 빛이 오디오의 스팩트럼처럼 올랐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할아버지의 예상은 빗나갔다. 몇차례를 본 오로라 중 선명한 초록의 향연이었다. 
라플란드의 하늘에 오로라가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고, 나의 마음도 다시 요동쳤다.
그 날의 오로라는 말로 형언키 어려운, 밤하늘의 춤판이었다. 
아무도 없던 시린 눈밭에서 한국에서 온 어리숙한 남자와 북극권에서 춤추기 시작한 오로라. 노던 라이트.

오로라, 라플란드 그리고 나. 그렇게 우리는 그 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낯선 행복의 만남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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