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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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숲
시간의 숲. 오늘 너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내가 그곳으로 갔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야.수억 시간의 비밀을 간직한 채 너는 그대로 있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그곳으로 가서 너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지.얼마나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네가 가진 시간의 숲을 보는 나는 모든 것이 감동으로 다가왔어.속속들이 네가 간직한 비밀. 시간의 숲을 다 둘러볼 순 없었어. 아주 일부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너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을 뿐이었어.너는 고스란히 말하지 않아도 네 존재만으로 너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지. '순간의 찰나들이 모여 영원을 이루어 간다.' 나는 이 말을 늘 생각하며 살아왔거든. 영원이라는 것은 어떤 순간도 어떤 찰나도 모이지 않으면 마치 잘 맞춰진 퍼즐이 되..
2012.04.24 -
Arizona Motel #403는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
Arizona Motel 403호는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적당한 모텔을 예약하고 30시간이 걸려 그 어느 Arizona Motel에 도착했다. 햇살은 내 고향 봄처럼 후끈 거릴 정도의 온도였고, 봄바람으로 부터 꽃씨들이 나풀거리는 평온한 어느 낮이었다. 카운터 종업원은 내게 방을 배정해주었고, 나는 맨꼭대기 방으로 달라고 했다. 4층의 어느 방중이었다. 그 종업원은 403호라고 쓰여진 방키를 내게 건내고 어떻게 하면 그 방으로 향할 수 있는지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403호는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것 처럼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었고, 건물의 제일 위 그리고 제일 측면에 덜렁 혼자 나를 반기고 있었다. 모텔 주인으로 추정된 한 사내는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잡아 세우고 403호에 ..
2012.04.12 -
바다는 나의 운명, 인도 피싱빌리지의 아침풍경
1. 해가 뜨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새벽녘 해변의 분주함은 낮의 그것과 달랐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부랴부랴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백사장을 향해 내달렸다. 더운 날씨였지만 푸르른 여명 속의 바닷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줄 여유도 만끽할 수 없었다. '벌써 일을 시작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은 잠시. 걸어야 하는 길은 해뜨지 않은 시각치곤 꽤 멀었기에 그들을 향해 달려야만 했다. 백사장에 널려진 인분을 피해서... 희끗하게 보이는 먼바다에는 여전히 조업 중이었고, 밤을 새워 조업을 마친 어부들은 이미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인도 동부 해안 피싱빌리지는 요상한 인도의 혼돈과 같이 걷잡을 수 없었다. 새벽에 조업을 마치는 팀과 곧 바다로 나가는 팀이 교대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산한 새벽 속에 ..
2012.03.20 -
노던 라이트
이나리에서부터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길은 모두 눈으로 뒤덮혀 있었고,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나무와 눈 그리고 간간히 달려가는 자동차 뿐이었다. 적막감이 온몸을 감쌌고, 버스에 몸을 의지한 채 북쪽으로 올랐다. 북으로 북으로 올라 노르웨이로 넘어가는 단순한 루트가 그리 쉽지 않았다. 겨우내 내린 눈으로 국경은 폐쇄 되었고, 나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나는 듯 했다. 어디로 가야 했을까? 결국 버스는 어느 한 적한 곳에 나를 내려주었고, 그리 북적이지 않는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 식당은 라플란드의 분위기와는 다르지 않았다. 살점이 흘러 넘칠 듯 한 주인은 메뉴판을 들고 나와 너스레 웃으며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을 했고, 가장 저렴한 햄버거와 콜라 그리고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손님이..
2012.03.09 -
인도에서는 시간의 개념을 버려라.
I. 여트막한 기억을 되집어 본 적이 있는지? 나의 인도방랑은 언제나 그 기억에서 다시 시작 되었을지 모른다. 새벽의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걸었다. 흐믈흐믈해진 공기들이 나의 피부, 나의 눈으로 부딪히고. 그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또 시간이라는 한정된 공간속에 내가 존재함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왜 인도로 내 발길을 이끌게 하는지 명확하고 적확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갠지스에서 숨을 쉬고 갠지스를 신성시 하는 그들 속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이미 갠지스인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곳에서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치 떠있는 수많은 공기입자 처럼. 늘 나는 강가에서 같은 일만 반복한다. 남들이 일어나는 시간, 해가 뜨기 전의 시간에 일어나 살아있는 몸뚱이를 이끌고 두발로..
2012.03.07 -
너 확실해?
밤하늘의 별과 오로라가 춤을 추던 그 곳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리셀카 국립공원에서 출발한 버스. 국립공원 안내원의 안내로 해가 뜨지 않은 아침에 부랴부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내부는 텅비어 있었고 한 사내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잠들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버스는 더 탈 손님이 없음을 확인하고 눈길을 미끄러지듯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길은 보일듯 말듯 한 눈보라 사이를 뚫고 지나갔고 수시간을 달린 후 이름도 모르는 어느 도시에서 무작정 서버렸다. 그리고 버스기사는 2시간 후에 다른 버스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2시간 그 공터에서. 그때서야 꿈나라를 헤메던 그 사내와 말을 나누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는 어리둥절 하게. "여기가 어디지?..
2012.03.05